독일 경비병 판례와 5.18 특별법을 통해 본 자연법과 실정법의 논의

연세대학교 법학회 비즈로 트랙은 독일 경비병 판례와 우리나라의 5.18 특별법 사례를 통해
법학의 근원적 질문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실정법과 자연법의 갈등에 관해 토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자연법의 측면에서는 라드부르흐의 법 이념 사상에 입각하여 견해를 발표하였고, 실정법의 측면에서는
H.L.A. 하트와 법 실증주의에 입각하여 이 사안들을 분석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독일의 경비병
피고인 A와 B는 동독의 국경 경비대 일원으로 1984년 12월 1일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3시 15분 경 장벽을 넘으려는 20세 동독인을 향해 연발 사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위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은 경비병이 모두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각 25, 27발이 발사되었고, 2시간이 조금 못되어서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사망하였습니다. 비밀 준수규정등에 의해 후속조치가 늦어질수밖에 없었고, 구조조치를 실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A는 1년 6개월 소년형, B는 1년 9개월의 자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라드부르흐의 입장에서 발표를 진행해준 최동찬 학우는
공성성과 법적 안정성이 갈등에 처한 경우 실정법은 그 실정법의 공정성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도달하여 그 법이 부당한 법으로서 공정성에 자리를 내주어야만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내용상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라 해도 우선권을 가진다는 라드부르흐의 말을 인용하면서 법이념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법이란 선한 의도하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제정된,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 수단이라면,
법률적 불법은 태생은 좋은 법일지 모르나, 적용단계에서 위정자 혹은 지지자, 이해관계가 있는 세력에 의해 쓰임새가 왜곡된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존재하는 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초법률적 법으로 모든 법적 문언보다 더욱 강력한 법 원칙으로서 사회 혹은 법체계에 결여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기준이 제시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악법은 애당초 법이 아니며, 고로 이러한 악법의 처단에는 절차적인 수단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 29조 2항을 보면, 경우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는 직무집행에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공무원의 권한 강화를 위한 이러한 부당한 헌법적 입법에 대해 현행 법체계상 위헌 법률 심판은 법률에 대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당시 정권하에서는 이러한 법은 개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라드부르흐의 논리는 이러한 법을 개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헌법 제 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이 규정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양심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법 초월적인 개념으로 어떤 정의감이나 자의의 개입을 정당화시켜주는 근거라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판례로 들어가서, 경비병의 행위는 다음 3가지 이유에 의해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1. 동독 국경법의 정당화 사유의 무효성
국경법에 따르면 반드시 경고사격을 행하게 되어있는데, 피고인들은 이를 위반하였고, 단발사격 조항을 위반하였습니다. 
2. 국제 인권협약에 명시된 출국의 자유 침해
당시 동독의 국경법은 반인권적인 법이었다고 합니다. 국경을 지키기 위한 법에 임의적 사살권을 부여했다는 점, 국제 인권협약에 가입했음에도 이를 이행하기 위한 절차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국경법은 그 정당성에 대해 회의를 가질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3. 경비병들의 행위의 위법성 인식
악법에 의해 세뇌를 당한 경우, 신뢰보호의 원칙에 의거하여 감경/감량을 받을 수 있지만, 당시 경비병들은 재판에서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뉘우치는 등, 혐의를 인정하고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등에서 처벌은 불가피했습니다.


이 사건을 라드부르흐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1. 국제 인권협약을 당시의 국내법에 우선하여 적용할 수 있음
동독도 국제인권 협약에 가입해 있음으로서 인권이라는 이념과 가치를 동등하게 중시하고 있다는 점
2. 당시의 국내법에 대한 재해석이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음
3. 동독에 진정한 사법제도가 존재하였다고 보기 힘들다
의 3가지 근거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5.18 특별법 위헌 심사 판례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인 1995년, 우리나라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한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제기되었습니다. 문제는 공소시효였는데요, 그 기산점을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필요했고, 헌법재판소에서는 두 전대통령 재임기간 도중에는 형사 소추가 불가능했던점을 들어 공소시효를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특별법에 대해 위헌여부를 심사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대법원에서 공소시효를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시점으로 판단함으로써 5.18특별법이 부진정소급입법 처리되었습니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두 전대통령의 내란죄는 처벌이 가능해졌습니다.


판례에 따르면 위헌 심사는 다음 사항들에 대해 이루어졌습니다.
1. 개별사건 법률로서의 위헌여부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공익이 인정될 수 있다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
2. 소급입법 해당 여부
헌법 재판소에서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3. 부진정소급효를 가지는 경우 법치주의 정신 위반 여부
공익을 비교형량하여 개인의 신뢰보호 보다 우선할 경우 위헌이 아닐 수도 있다.
4. 진정소급효를 가지는 경우 법치주의 정신 위반 여부
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허용이 가능하다.


최동찬 학우는 라드부르흐의 입장을 따르게 된다면 이러한 특별법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고 합니다.
1. 처벌에 대해서 국민들이 공익에 대한 신뢰성이 확실
2. 헌법과 상충될 소지를 가진 특별법의 입법은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저해
3. 법률적 차원의 이익을 넘어서 자유민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을 위한 이정표를 마련해야 할 공익적 칠요성 요구
4. 사안은 법치국가적 원칙이 완전히 무시되고 법률의 집행이 왜곡되는 중대한 장애사유가 있는 경우이므로 "정의"의 실현을 통한 법치국가의 기본 정신의 확립이 필요
5. 헌법 제 103조는 법관의 양심을 판단의 기준으로 명시, 법관법의 적용 가능성을 열어둠


같은 판례들에 대해 최고 학우는 하트의 법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다른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법 실증주의는 실정법만을 법으로 인정하는 법학의 입장입니다.
이에 따르면 법의 이론이나 해석, 적용에 있어서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요소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법 자체만을 형식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입니다.

가치라는 것은 주관적이며, 필연적일 수 없습니다.

라드부르흐의 논변은 참을 수 없는 정도로 부정의한 법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법의 효력을 부정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법적 안정성보다 법적 정의를 우선시하게 됩니다. 불법논변은 불법 국가의 재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사물의 본성을 제시해야 함에도, 부정의한 법에 대한 정의가 불명확하고, 정당성이란 것도 상대적인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합니다.

1. 소급효 금지의 원칙을 위반
2. 불법 논변의 효과 : 나치 하의 충실한 법복종자를 현재의 법에 근거한 비도덕성을 이유로 처벌한 것 이외에 불법 국가에 대한 아무런 경계심을 심어주지 못한다는 점
3. 일반 시민에게 법의 도덕성 판단과 복종의 여부를 위임함으로써 법의 구속성이라는 본질을 망각하게 만들고 인간 이성의 한계와 의지의 나약함을 무시한 무책임한 변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트는 법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언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하고 법에서의 언어도 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언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고, 한계 범위를 설정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하트는 법의 개념을 행위규범으로서의 일차규칙과 수권규범으로서의 이차규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차 규칙에는 승인, 변경, 재판의 규칙이 있는데, 현재 논의에서 특히 중요시해야 할 규칙은 바로 승인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이란 승인의 규칙을 통과해서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하며, 법의 제정이나 변경, 그리고 적용에 있어서는 변경의 규칙, 재판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는 법의 형식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트는 최소한의 자연법 개념을 제시하면서 나치이후 법에서도 법에 대한 도덕적 비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화해의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증주의를 택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하트의 중간적 입장을 비판하면서 법의 형식을 보다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경비병 판례에서 법 실증주의에 따르면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행위에 대한 지시, 규제의 역할을 법적 명령이 수행하며, 여기에는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수 없다고 합니다. 상부의 명령이 비록 악법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처사이지만, 이 법이 무효로 결정되어 판결에 소급될 수 없을 때까지는 법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가진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경비병은 처벌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 실증주의에 따르면 경비병의 행동은 도덕적인 판단, 즉 개인의 인간성에 대한 요청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법적 규제, 지시에 따라서 수행된 행동이므로, 일차적으로는 처벌될 수 없다고 합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법 효력은 해당 법의 합법성, 실효성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이 합법성, 실효성을 고려할 때 바로 인간성에 대한 요청, 도덕적 관습법이 영향을 미칠수 없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수상황의 경우, 절대적인 주권자의 일반명령에 대한 법적 복종이 필요한 것이고, 경비병의 행동은 이를 복종한 건전한 법의식 하에서 수행된 것이므로 처벌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봐야한다고 합니다.


 

임종철 학우 : 라드부르흐는 결코 법적 안정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 법 이념에 대한 합목적성이 심각하게 침해당한 경우에만 보충적으로 법적 안정성보다 우위에 둘 수 있다는 것이죠.
동독 경비병의 행위에 관해서는 주권자의 정당한 명령에 의해 제정된 실정법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정으로 정당한 명령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 체제에 의해서 모든 절차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제정된 것이 아니라면 그 법의 정당성은 부정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회에서 통과시킨다고 무조건 법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 학우 : 북한의 경우를 생각해보죠.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들의 법체계를 무조건 부정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스스로가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라는 이유로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가 가지는 합리성을 북한의 주민들에게 강요할수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 영미법과 대륙법은 기본적으로 실증주의적 법철학에 입각하여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올바르게 기능하고 국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 법률을 보고 예측가능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실정법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나치와 같은 반 인륜적 행태가 합법적 절차라는 탈을 쓰고 사회를 이끌고 나갈지 알 수 없습니다. 이상황에서 우리가 양심을 따르고 인간의 존엄성이나 행복 추구와 같은 초법규적인 가치들을 추구하는 자세는 존재하고 있는 법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률로 정의하거나 규제하지도 못하는 추상적인 이념들이지만, 법이 정의를 만드는 것인지, 정의를 위해 법을 만드는 것인지 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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